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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9 00:06

누군가는 읽을 편지 기억




 신문에 내 이름이 나왔다며, 반색을 한 얼굴로 친구가 우리 반을 찾았다. 때는 초등학교 6학년. 2교시가 끝나면 낭창한 목소리의 방송부 아이들이 진행하던 교내 방송이 교실마다 울렸고, 우리는 키가 무럭무럭 자랄 것이라는 믿음으로 함께 우유를 마시던, 그런 쉬는 시간이었다. 그때 우유를 충분히 더 마셨다면, 지금보다 더 키가 컸을 텐데!


 지금 보면 짝퉁 메이커 같은 NIE(Newspaper In Education의 준말)라는 교육 방법이 유행했을 때. 요즘 같은 시대라면 여성부의 격한 항의를 받았을 '소년동아(과연, 현재는 어린이동아로 이름이 바뀌었다!)'라는 신문을 전교생이 구독해야만 했다. 덕분에 각 반에는 이른 아침 자신의 학급 인원수만큼 신문을 가져가는 신문 담당 학생을 뽑아야 했다. 소싯적부터 신문 배달에 눈을 트이게 해주니, 이야말로 체험 삶의 현장이 아닌가?

 아침 첫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신문을 훑고, 기사 한 꼭지를 가위로 오려내 NIE라고 큼지막하게 적은 공책에 붙이는 것이 NIE의 시작이다. 신문이 울지 않도록 딱풀을 사용해 기사를 오려 붙이는 것이 상식으로 통하던 때였다. 숙제를 제출하는 것은 쉬웠다. 가장 첫 면에 붙은 메인 기사를 오린 뒤, 당황하지 않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봤던 모닝와이드 뉴스에서 그날 배운 어렵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는 단어를 곁들여) 간단한 사족을 달아주면? 끝.


 당시 나의 관심이 향했던 곳은 신문 기사의 내용이 아닌 '펜팔 친구 구인광고'였다. 자신의 이름과 학교, 학년과 집 주소를 적어 신문사에 보내면 1주일에 예닐곱 학생의 광고가 실렸다. 내가 정말 이곳에 엽서를 보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을 무렵, 신기하게도 나의 이름과 학교, 학년 그리고 집 주소가 신문에 실리게 된 것이다.


 내 이름이 신문에 나왔다는 사실보다 더욱 놀라웠던 사건은 며칠 뒤에 일어났다. 당시 우리 가족들은 집에 들어오며 우편함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보통은 부모님에게 오는 고지서, 명세서가 대부분이었지만. 하루는 학교 친구들과 신 나게 공을 차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우편함을 뒤적이는데, 이게 웬걸!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한 움큼의 편지가 와있었다.

 언론의 위대함을 몸소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첫 편지가 도착한 이후, 매일같이 수 십 통의 편지가 우리 집 우체통에 배달되었다. 아마 집배원 아저씨는 내가 아이돌로 데뷔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셨음이 틀림없다. 매일 집으로 돌아와 전국에서 전해진 편지를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어림잡아 100통은 됐을 편지들이 짧은 기간에 들이닥쳤으니, 교과서 읽을 시간보다 편지를 읽는 시간이 필요했다.


 모두에게 답장을 하기에는 나의 손과 우편 요금을 감당할 수 없는 나이였기에 나는 부득이하게 펜팔 친구 심사를 거치게 되었다. 가령, 글씨가 예쁘다거나 하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열 명 가량의 친구들에게 답장을 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 반이 줄고, 또 반이 줄어 중학교에 입학하던 때에는 한 명의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름) 바빠지며, 자연스럽게 펜팔은 끝이 났다.


 펜팔에 대한 갈증은 멈추지 않았다. 남자라면 누구나 편지에 고파하던 군인시절에도 후임이 지인을 소개한 덕분에 펜팔을 하게 되었다. 병장 시절 시작해 대여섯 번의 편지가 오갔다. 이쯤 되면 실제로 만나보지 그랬냐는 부추김도 있을 법하지만, 펜팔은 종이와 글씨로만 만나야 한다는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원칙이 깨어지면, 관계 역시 변질되기 마련이기 때문.






 계란 한 판의 나이가 되어가는 나는 지금도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우편함을 뒤적인다. 기존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빌라의 현관문 대신 아파트의 디지털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른다는 사실이다. 전처럼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편지가 없는 것은 아쉽지만, 이따금 난데없이 보내오는 지인들의 엽서라도 있는 날이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매일 집배원 아저씨를 기다리며 애꿎은 꽃을 꺾기도 하고, 뜀박질을 하기던 그때.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사서함을 만들어서 편지를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편지를 보내게 하고, 편지를 쓴 사람에게 답장으로 그 편지들을 임의로 보내면 어떨까라는 생각. 누가 읽을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읽게 될 편지를 쓰는 것 말이다. 함께 우편함에 슬쩍 손을 넣어보는 설레는 기다림 같은 것.




덧글

  • Glinda 2014/07/19 01:50 # 답글

    어린이동아 어린이 명예기자였었는데!
    오랜만에 듣는 NIE네요. :D
    흠... 전 펜팔로 그렇게 인기가 있었던 적이 없었는데 ㅜ 부러워요!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편지를 사용하는 이유는 편지만이 가지고 있는 그... 따뜻함? 화사함?때문인 것 같아요.
  • 가위손 2014/07/19 09:48 #

    기자님을 여기서 다 만나다니! 반갑습니다 :)

    예전에 나눴던 편지만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작지만 꽤 강한 힘이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참 매력적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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